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와 욥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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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신의 위대한 질문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와 욥의 고난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유신론 체계의 가장 풀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인 ‘인간 고통’의 문제에 대한 묵상이다. “신은 위대하고 선하다면, 악이 존재할 수 있는가?” 혹은 “왜 착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고통을 받는가?”

 

이 질문은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주인공인 잭 오브리언의 영혼을 일생 동안 괴롭힌 화두다. 잭은 순진하던 동생의 죽음으로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특히 천사와 같은 잭의 엄마인 오브리언 부인에게 아들의 죽음은 바로 벼랑으로 떨어지는 공포이자 절망이었다. 잭의 엄마는 왜 이렇게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잭은 완벽히 선한 신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 없는 고통을 화해시키기 위해 인간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의미를 찾아 묵상 여행을 시작한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이 영적인 여행에 관한 내용이다. 맬릭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창조 과학 소설(Creation, Science, Fic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맬릭 감독은 우주 창조에 관한 웅장하면서도 감동적인 서사시를 보여주기 전에, 영화 전체의 흐름을 잡아주는 에피스도로 시작한다.

 

잭의 엄마인 오브리언 부인은 자신의 아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그녀는 하늘을 응시하고 속삭인다. “오, 주여! 왜?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이 질문은 우주를 창조한 후 ‘모든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아담에게 한 신의 첫 질문인 “네가 어디 있느냐?”이다. 이제 인간이 그 신의 첫 질문을 신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영화는 오브리언 부인의 이 질문에 대한 대답과 신이 욥에게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숭고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욥은 신이 인정하는 의인이었다. 그는 신과 자신 앞에서 흠이 없고, 가족과 이웃이 보기에도 정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 부자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날리고, 열 명의 자식들마저 잃는다. 욥의 부인은 그러한 신이라면 저주하고 죽으라고 부르짖지만, 욥은 자신의 신앙을 고수한다. 신은 더 혹독한 고통으로 그를 시험한다. 욥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 전체가 욕창으로 가득 차 길거리에 주저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신세가 됐다.

욥은 신에게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이유를 묻는다. 왜 욥과 같이 선한 사람이 이 같은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왜 신은 의로운 자가 고통을 받도록 허용하는가? 그런 신을 믿어도 되는가?

 

신은 이러한 욥에게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신은 <욥기> 38~41장까지 쉴 새 없이 다시 욥에게 질문한다. <욥기> 3장~37장에 등장하는 욥의 수많은 질문에 침묵하던 신이 일단 입을 열기 시작하자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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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은 욥의 질문에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기아나 질병으로 죽는다. 왜일까? 신앙인들은 그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보내거나 기도를 하지만 신은 침묵한다. 왜일까? 이것이 신의 섭리인가? 만일 굶어 죽어가는 아이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당신은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을 것인가? 왜 욥의 “완벽하게 선한” 신은 침묵하고 있는가? 그는 인간보다 못한 존재인가? 이것이 <욥기>에 등장하는 질문이자 <트리 오브 라이프>에 등장하는 오브리언 부인의 질문이다.

 

“주님, 왜? 어디에 계십니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신학자들을 괴롭혔다. 맬릭 감독은 <욥기> 38~41장의 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영상을 담았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우주 창조를 빅뱅으로 시작한다. 폴란드 작곡가 즈비그뉴프라이스너(Zbigniew Preisner)의 <라크리모사(Lacrimosa)>가 배경 음악으로 깔린다. <욥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이 기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듯하다. 인간의 슬픔, 잭과 오브리언 부인 그리고 우리의 슬픔의 노래가 빅뱅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오브리언 부인은 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당신에게 우리는 누구입니까? 대답해주십시오. 우리는 당신에게 울면서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는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우주 창조의 절정은 바로 ‘잭’으로 상징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잭은 행복하지 않다. 그는 한마디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친 현대인의 표상이다. 잭의 표정과 말에서 그의 인생이 불행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잭은 자기 엄마처럼 상투적인 말로 중얼거린다. “세상은 엉망이 됐어. 모두 돈에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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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건물들은 걷잡을 수 없는 숲의 나무처럼 잭을 둘러싸고 숨통을 조인다. 하늘을 볼 수 없는 도시는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존재하고 자족하며 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인간 스스로 죽음을 인생의 종착역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무료하게 살아간다. 잭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잭은 자신의 주위에 허황된 세계를 세우고 진리로부터 자신을 감춘다. 영화에서 잭은 성공한 건축가지만, 영적으로는 파산 지경에 도달해 있다. 그의 영혼은 삭막한 도시 안에 정착하지 못해 떠돌아다니며, 그 안에 살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서 점점 소외되고, 고층 건물 안에서 그저 일벌레로 살아간다. 영화는 우주 창조에서 다시 잭의 탄생으로 넘어간다.

 

잭은 다음과 같은 속삭임을 듣는다.

“당신은 내게 그녀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늘과 나무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알기도 전에, 나는 당신을 사랑했고 믿었습니다. 당신이 언제 처음으로 내 마음속에 오셨나요?”

 

<트리 오브 라이프>는 1950년대 잭의 유년 시절에서부터 차츰 순진함을 잃게 되는 10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에덴동산과 같은 가정에서 살던 잭은 점차 세상의 현실을 알아간다. 잭은 어렸을 때 동네 연못에서 수영을 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소년에 대한 기억으로 죽음에 집착하게 된다.

 

그는 신에게 “당신, 어디에 계십니까? 소년을 죽게 놔두다니, 아무 일이나 생겨도 당신은 상관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선하지 않은데, 내가 선해야만 합니까?”라고 질문한다. 인생의 불확실성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극단으로 치닫는다. 동생이 베트남 전쟁에서 죽자 잭은 더 이상 순전한 사람이 아니게 된다.

 

잭의 가정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엄마의 세계와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아빠의 세계다. 맬릭 감독은 엄마 오브리언 부인의 속삭임을 통해 이원론적인 세계를 소개한다.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자연의 길과 은총의 길, 당신은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은총은 스스로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무시당하고, 잊혀지고, 말없이 미움을 당한다. 심지어는 모욕과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애쓴다. 외부가 자신에게 기쁨을 주기를 바란다. 다른 이들의 주인 노릇을 하고 싶어 한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햇빛이 세상을 밝혀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찾는다. 사랑은 모든 것에 미소 짓는다.

 

이 글은 아마도 맬릭 감독이 토마스 아 켐피스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자연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노동하고 다른 존재로부터 무슨 이익을 찾을 수 있을까 궁리한다. 그러나 은총은 자신에게 유용하고 편한 것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추구한다. 더욱이 자연은 욕심이 많고 주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하며 자신의 것을 더 사랑한다. 한편 은총은 친절하며 너그럽게 이기적이지 않으며 적은 것에 만족하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믿는다.

 

오브리언 부인은 은총을 상징한다. 그녀는 친절하고 너그럽게 헌신적이며, 항상 용서하고 사랑을 주는 존재다. 그녀는 간단명료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순진하기만 한 말을 한다.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용서하십시오.”

 

아버지 오브리언은 어머니와 정반대다. 아버지는 자연을 상징한다. 그는 엄하고 야망이 넘치며, 경쟁적이고 용서하지 않고 이기적이며 속물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아빠’가 아닌 ‘아버지’로 부를 것을 요구한다. 그는 자녀들이 세상에 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너희 엄마는 순진해. 너희들이 성공하고 싶으면 너무 착하게 행동하지 마. 정신 차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상인 자연과 은총이 잭의 마음속에서 갈등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아빠와 엄마 모두가 내 안에서 씨름하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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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의 내적 갈등은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만만하던 아버지가 점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해결되기 시작한다. 아버지 오브리언은 사업에 실패하자 자신감을 잃고 감정적으로 약해져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브리언은 처음으로 잭에게 용서를 빌며 “가정을 당연히 여기고 무시하고, 가정이 가져다 주는 영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라고 고백한다.

잭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팔에 안긴다. 그 순간 빛이 그의 영혼에 스며들어 혼돈을 걷어내기 시작한다. 그 빛은 바로 우주가 창조될 때, 그 빅뱅을 가능하게 한 바로 그것이다. 잭은 아버지를 껴안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용서는 현실을 헤쳐나가는 열쇠가 됐다.

잭은 이제 사랑이 모든 악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처방전임을 깨닫는다. 그는 이제 모든 나무와 잎, 돌, 태양빛을 사랑할 것이다. 이것이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은 우리를 영원한 세계로 인도한다.

어른이 된 잭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그 영원한 세계로 가기 위해 또다시 흉흉한 바다를 건너야 할지도 모르지만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삶에 대한 ‘지식’을 어렴풋하게나마 얻게 된 것이다.

인간은 ‘무지’라는 불확실성을 대면해야 한다. 그 무지의 일부가 바로 죽음이라는 현실이다. 그것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신비’라고 부른다. 인간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조절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지극히 순간의 삶을 살다 갈 뿐이다.

어른이 된 잭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맨 처음에 나왔던 그 문을 다시 통과한다. 그는 인간의 유한한 삶 가운데서 어머니가 남겨 준 은총을 통해 자신을 괴롭혔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제 영원한 세계로 향하는 인생 항해를 시작하려 한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창조주의 무한한 지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그 광경을 목격하지 못한 인간이 신의 우주 창조의 목적을 알 수 있을까?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가장 철학적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다. 욥은 신이 보여준 우주와 대자연의 신비를 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얻게 됐다. 욥이 말한다.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욥은 신이 인정하는 동방의 의인이었지만, 자신의 미천한 지식으로 삼라만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떠든 것이 잘못임을 깨닫는다. 욥은 기껏해야 우주의 한 점에서 한순간을 사는 존재임을 절실하게 인식한다.

 

배철현, 『신의 위대한 질문』 373-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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