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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유럽에 추월당한 불운의 과정총균쇠 2020. 8. 2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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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유럽에 추월당한 불운의 과정
어째서 유라시아 내에서도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중국이나 인도가 아니라 하필 유럽의 사회들이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식민지화하고 기술을 선도하고 현대 세계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우세하게 되었을까?
만약 B.C.8500년~A.D.1450년에 살았던 어떤 역사학자가 미래의 역사적 궤적들을 예측했다면, 틀림없이 유럽이야말로 장차 우세해질 가능성이 가장 적은 지역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10000년쯤 되는 기간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럽은 구세대의 세 대륙 중에서 가장 낙후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B.C.8500년부터 그리스가 흥성하고 그 뒤를 이어 이탈리아가 흥성하기 시작한 B.C.500년 이후까지, 서유라시아 일대에서 동물의 가축화, 식물의 작물화, 문자, 야금술 등의 중요한 혁신은 거의 모두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 또는 그 부근에서 이루어졌다. A.D.900년경 이후 물방아가 급격히 늘어나기 전까지는 알프스 서쪽이나 북쪽의 유럽은 구세계의 기술 및 문명의 중요한 공헌을 한 일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지중해 동부, 비옥한 초승달 지대, 중국 등지에서 개발된 문물들을 받기만 했다. 심지어 1000년~1450년에도 과학과 기술은 주로 인도에서 북아프리카까지의 이슬람 사회로부터 유럽으로 흘러드는 쪽이었다. 이 시기에는 중국이 세계의 기술을 선도하고 있었는데, 식량 생산을 시작한 시기가 거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필적할 만큼 빨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은 수천 년이나 앞서갔으면서도 어째서 뒤늦게 출발한 유럽에 추월당하고 말았을까? 물론 유럽이 흥성한 직접적 요인들을 지적할 수는 있다. 유럽은 상인 계급과 자본주의가 발달했고 발명품에 대한 특허권을 보호했으며 절대 군주나 무거운 세금이 없었고, 또한 경험주의적 탐구 정신을 중시하는 그리스적 유대교적 기독교적 전통을 갖게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직접적인 원인들에 대해 우리는 궁극적인 원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그런 직접적인 요인들은 어째서 중국이나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아니라 하필 유럽에서 발생했을까?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경우에는 분명한 해답이 나온다. 그곳은 원래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몇 천 년 일찍 출발할 수 있었지만, 일단 그 선발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더 이상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이 같은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이 이상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이 같은 간격이 사라져간 과정은 강성한 제국들이 점차 서쪽으로 옮겨진 경로를 통해 상세히 더듬어볼 수 있다. B.C.4000년~3000년경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국가들이 탄생한 후 처음에는 힘의 중심이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의 제국들 사이를 번갈아 이동하면서 줄곧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B.C.4세기 말 알렉산더 대왕 치하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부터 동쪽으로 인도까지 정복하면서 드디어 힘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돌이킬 수 없는 첫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B.C.2세기에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면서 힘의 중심은 서쪽으로 더 이동했고 로마제국이 멸망한 디에는 다시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이동했다.
이 같은 주요 이동의 주요 요인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금방 자명해진다. 오늘날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느니 ‘전 세계 식량 생산의 선도 지역’이라느니 하는 표현이 터무니없게 들린다. 옛날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했던 많은 지역이 지금은 사막, 반사막, 스텝으로 변하거나 토양이 심하게 침식되거나 염분이 너무 많거나 해서 농업에 부적합한 땅이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날 이 일대의 일부 국가들은 재생이 불가능한 석유라는 유일한 자원을 바탕으로 일시적인 부를 누리고 있으며, 그 덕분에 이 일대가 오랫동안 근본적인 빈곤에 시달리며 생존 자체가 어려운 지역이었다는 사실이 잠시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동부 일대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많은 지역이 숲으로 덮여 있었다. 이 일대가 원래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많은 지역이 숲으로 덮여 있었다. 이 일대가 원래의 비옥한 삼림 지대로부터 침식된 잡목 지대 또는 사막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고식물학자들과 고고학자들에 의해서도 자세히 밝혀졌다. 이곳의 숲은 농업을 하기 위해 개간하고 건축용 목재를 구하기 위해 벌채하고 땔감으로 쓰거나 회반죽을 만들기 위해 태우는 바람에 사라지고 말았다. 더구나 이 일대는 강우량이 적어서 처음부터 (강우량에 비례하여) 생산성이 낮은 편이었다. 따라서 식물이 다시 자라는 속도가 파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는데, 특히 지나치게 많은 염소를 방목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땅을 덮고 있는 나무와 풀이 사라지면서 토양 침식이 진행되어 계곡에 침니가 쌓였고, 강우량이 적은 환경에서 관개 농업을 했으므로 현대까지 계속되었다. 예를 들자면 현대의 요르단에서 나바티아(팔레스틴의 고대 아랍 왕국)의 수도 페트라 부근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숲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에 오스만 터키가 헤자즈 철도를 건설할 당시 벌채되어 없어졌다.
그리하여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지중해 동부의 인간 사회는 생태학적 불모지에서 탄생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원의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학적 자살을 저질렀던 것이다. 동쪽(즉 비옥한 초승들 지대)에 있던 가장 오래된 사회들부터 시작하여 지중해 동부의 사회가 차례차례 자멸함에 따라 힘의 중심은 차츰 서쪽으로 이동했다. 북유럽과 서유럽이 그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 사람들이 더 현명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더 강인한 환경, 즉 강우량이 더 많아서 식물이 더 빨리 재성장할 수 있는 것에 사는 행운을 타고났다. 식량 생산이 가능해진 이후 7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북유럽과 서유럽의 많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집약적인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유럽은 농작물, 가축, 기술, 문자 등을 모두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부터 받아들인 셈인데, 그 이후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힘과 혁신의 중심지라는 위치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유럽보다 훨씬 앞서가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추월당하게 된 과정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59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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