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계 - 솔연 같은 뱀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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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계 - 솔연 같은 뱀의 자세

 

협업을 시작할 때는 애초부터 여러 개의 플랜을 미리 마련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입사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일이 능숙해질 즈음에는 ‘대안 마련’에 익숙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의 대안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에 뛰어난 상사들은 플랜 B뿐만 아니라 플랜 C, 플랜 D까지 마련해 놓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직장인의 경우, “협업은 무조건 안 된다고 견제하고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직장인은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나고 협업을 이끌어 내는 능력도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상대방이 아무리 믿음직하다고 하더라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다. 그의 이런 자세는 진나라의 사자였던 왕계가 가졌던 태도와도 같다.

 

어느 날 범저라는 자가 왕계에게 자신의 등용을 왕에게 부탁해 달라고 찾아왔다. 그 후 범저는 왕계에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왕계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세 가지가 있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왕이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고, 당신이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느날 구덩이에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세 가지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관직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이대는 것은 좀 지나쳐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일이 현실이고, 더욱이 이런 자세로 최악을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따라서 처음부터 아예 협업이 안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직장인의 자세 역시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어도 일의 진행이라는 안전의 측면에서는 분명 장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군사 작전에서는 이를 상산사세(常山蛇勢)라고 표현한다. 《손자병법》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혜롭고 유능한 장군의 용병술은 상산에 사는 머리가 두 개인 솔연(率然)이라는 뱀의 행동과 같다. 솔연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드는 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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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협업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스스로 일을 마무리 지을 수도 있겠지만, 협업을 해야 한다면 또 다른 플랜을 통해 그 단점을 보완하고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머리와 꼬리, 그리고 몸통이라는 별도의 플랜들을 마련해 놓으면 위기의 순간에 잘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플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업무 역량도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언제든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또 다른 기회를 미리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업무에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협업 능력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매끄럽게 끝내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승진을 위한 최대의 발판 중 하나다. 협업은 수평적으로 다른 부서, 혹은 다른 회사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부하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당신이다. 협업 능력은 내 능력의 출발점이자 그것을 완결 짓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남훈, 『처신』, 7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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